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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개나리가 돋아남을 안다. 겨울잠에서 일어난 개구리의 울음을 안다. 벚나무 망울은 지금까지 있은 적이 없음을 안다. 여기저기 생기가 눈틈을 안다. 벚꽃이 날리면 가지 끝에 두릅이 익어감을 안다. 서서히 장미 망울은 맺히기 시작함을 안다. 천천히 피는 꽃이 어찌 아름다운지 안다. 주렁주렁 수염을 단 채 알알이 여문 옥수수는 그 여름임을 안다. 그러자 장미는 뉘엿거리지 않는 누구를 안다. 이제는 꽃을 보고 어느 계절의 어느 달인지 안다. 이제는 모두가 시작임을 안다. 이제는 계절을 함부로 깨닫고 싶지 않음을 안다. 꽃들을 여러 바라볼 때 묶인 마음은 제 스스로 풀림을 안다. 이제는 따뜻하게 사람과 계절을 안는다. 여직 누군가에게 깊은 마음으로 꽃을 건넨 적이 없음을 안다.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름을 ..

카테고리 없음 2022.06.28

중도(中道)

생각에 빠지게 될 때면 항상 다운되고 우울감이 든다. 아직까지도 우울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날 이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련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본인부터 아끼라는 말을 한번 해보려고. 생각에 빠지지 않으려고 다른 일에 몰두하는 것은 아픔을 잊는 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저 회피하는듯할 뿐이고, 발전과 성장은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그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진 않아야겠지. 음악을 듣고 글을 쓸 때면 항상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아직 예전이 그립긴 하다. 아무 생각 없이 무던하게 지나갔던 하루들.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 했던 하루들. 철 들기 싫다는 말도 어떤 이유에서 한 지 알아. 스스로가 사랑할 수 있을 만큼 내 모습이 아름다워 질 수 있게끔. 나만 알고 있는 부분마저, 도려내고 발라내어 사..

카테고리 없음 2022.06.14

황혼

남들과 행복은 다르고 고통은 같고 싶었다. 왜 이다지 반대로만 흘러가는지. 아무래도 적잖이 오랜 시간이 걸릴듯하다. 여전히 네가 너무 애틋하고 밉다. 나를 두고 아주 가신 임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길 바라오. 그러다 발목이 시큰거려 끈을 동여맬 때면, 그제서라도 고개 한 번 돌려주길 바라오. 기억처럼 난 그 자리에 서있을 테요. 손에서 놓친 호스처럼 마구잡이로 내가 흩어지고 있어. 얼른 다시 잡아버리고 싶지는 않아. 우리에겐 공백이 없었으면 하는 차진 마음. 산재하는 육신과 얼을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 있소. 고운 주름을 가진 부채가 황혼을 부리고 나는 처참히 파멸한다.

카테고리 없음 2022.06.08

시행착오

그렇다고 욕심이 없는 인간도 못 되니, 억겁의 시간과 고통을 견뎌야 할듯하다. 늦었다는 이유로 시작하지 않고 안주하고 있을 인간은 또 못 되니. 어차피 남들과 같을 거면서, 어차피 내려놓고 받아들일 거면서, 왜 특별하려고 안달이 났는지. 참으로 피곤하고 고집스러운 인간이다. 그럴수록 넌 하루가 짧게 느껴지도록 살아야 해. 나의 하루가 남들이 보내는 열흘이 되어야만, 남들보다 열 배는 희생해야만 만족할 수 있을걸. 더 아프고 힘들어, 더 몸부림쳐.

카테고리 없음 2022.05.30

할머니, 꽃

저번 달에는 조부모님을 모시고 꽃놀이를 다녀왔다. 몸과 마음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지경까지 된 탓에, 일 월 이후 처음으로 밖을 나갔다. 원래는 다른 만남을 위해 아껴놨었던 터였지만, 이제는 크게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때로는 여전히 너무 밉기도 하다. 그래도, 시원하기도 따뜻하기도 한 봄이 주는 바람은 아프고 새로웠다. 여전히 아무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 피부에 머무르는 바람에게 가지 말라 속으로 외쳤다. 맑은 바람이 코를 타고 속 깊이 가득 채워주길 바랐다. 그러다 덜컥 모두 차단되기도 했다. 우리 할머니께서 간간이 내뱉으신 말들은 전부 시가 되었다. 할머니, 꽃 시간을 어찌 알고 이리도 피는지 모든 눈 앞이 하얗다. 아 정말 한계없다. 까맣던 땅이 이제야 숨을 쉰다.

카테고리 없음 2022.05.27

허무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 어떤 각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냐에 따라 모든 것은 다양하다. 학문을 깊이있게 공부하지도 알지도 못 했지만, 개인의 지성이 많이 발전된 사피엔스들을 가장 현혹하기 쉬운 기조는 허무주의라는 말에 동의한다. 책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훈련소에서 처음 접했다. 밑줄 쳐놓은 내용들은 삶을 허무하게 바라보는 것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그 사람을 규정해버렸다.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며 읽었는지 온전히 받아들이긴 커녕. 내 마음 한 쪽에는 그녀를 그저 좋지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치부해버렸다. 오히려 이것이 허무한 생각이 아니면 무엇일까. 겪어보지 않고는 제대로 알지 못 한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여러 이유와 상황들이 존재했을터, 잘못된 생각이라면 깊이 이야기하고 수정..

카테고리 없음 2022.05.25

목표

대학만 가면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 어렸을 때부터 줄곧 듣던 말이었다. 물론 그 말 덕분에 다른 길로 새지않고 떳떳하게 좋은 학교를 갈 수 있었다. 공부 쪽에 재능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고, 그 재능을 묵혀놓지 않고 다른 곳에 허비하지도 않았다. 어른들이 보시기엔 부족한 부분이 없는 아이였다. 태가 나고, 예의에 충실하고, 무엇보다 학업에 열중이었고 결과로 증명했기에. 그럴수록 어른들에게 기대지 못 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기어코 가진 것은 무엇일까. 겨우 주변의 인정이 나의 멋이 되었다. 대학교에 와서는 정말이지 제멋대로 지냈다. 이제는 더 나아갈 곳이 없는 사람인양, 실제로 그런 줄 알았다, 이후로 삶은 적잖이 혼돈으로 가득했다. 중고등학교때는 노래에 빠졌었다. 단순히 소리를 잘 내는 사람이..

카테고리 없음 2022.05.24

가식

언제부턴가 츄라는 예명을 가진 연예인에게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지원 군(선임)에게 물려받은 PMP속에 ‘지구를 지켜츄’ 채널의 영상을 시청하게된 것이 계기가 됐다. 내가 관련 영상들을 자주 보고있는 것이 눈에 띄었는지, 소대원들은 내가 츄 양에게 관심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도 내가 아이돌에게 관심을 가질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관계때문에 속이 문드러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방심하면 안 되나 보다. 가장 높이 날 때가 추락의 위험이 가장 큰 법일까. 난 세상을 다 알고 있는 듯 행동했다. 소대원들은 츄가 가식적인 모습인 것 같아서 싫다고 했다. 돌아보니 나도 예전에 그렇게 생각한듯하다. 그저 교육받지 못 한 아이처럼, 무언가 나와 다르다면 선입견을 가지기 일쑤였다. 눈앞의 베일이 사라진 걸..

카테고리 없음 2022.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