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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kkyyuu 2022. 5. 9. 19:57

처음으로 모든 것들에 마주 대해보려고 한다.

입맛에 맞게 골라 마주했던 시간들도 나쁘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은 건 두 손이나 한 손으로 가렸었다.
그래도 운 좋게 대부분 타고남으로 편한 삶을 누렸다.

세상은 그렇게 사는 게 아니었다.

삶에 귀인이 적어도 한 명씩은 존재한다.
같이했던 시간이 길이가 어찌 됐든, 행복한 귀인이든 아픈 귀인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이미 왔다 갔든 옆에 있든 오지 않았든.

나 역시도 그런 사람이 있다.
이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잃고 나서야 더 깨닫게 되는 흔한 사례다.

‘같이 있을 때 소중함을 모르지는 않았어’하며 날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다. 그렇게라도 해야 숨을 쉬겠더라.

그만한 영향력 있는 사람인지, 내가 처한 상황 때문인지, 언젠가는 일어날 문제였든지, 원래대로면 평소처럼 잘 지낼수 있었든지.

이미 터져버렸다.
자의든 타의든 마주해야 할 시간이다.

어쩐지 눈물이 미워 눈물을 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사내가 눈물의 시대에서 눈물을 흘리려 하니 쉽지가 않았다.
몇 방울이 될진 모르겠지만 몇 자 글에 담아보고 싶더라.

누군가는 깊은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분명 나는 머무르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지만,
나를 지금 모습, 앞으로의 모습까지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여기 혹은 저기에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머무르는 것을 죽도록 바라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이 글을 쓰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조금이라도 더 알아주었으면 해서,
또 다른 이유는 나와 대화하기 위해서,
또 다른 이유는 너와 대화하기 위해서,
또 다른 이유는 너무 답답해서,
또 다른 이유는 그냥 멋있으니까.

근데 또 완전히 나를 아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뒤에 뭐가 없더라도 나는 더 있는 척을 할 테니까. 또 그것마저 알아주는 사람을 원할 테지.

하지만 나조차 나를 알지 못 한다.

주변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내가 누구인지 헷갈린다는 말이다. 나도 나를 모르니까 당연한 처사였다. 근데 웃기게도 나는 스스로를 규정시키는 걸 몸서리치도록 거부하는듯하다. 나는 헷갈리는 사람이고 싶나 보다.

예전부터 그랬다.
항상 어느 쪽에 기울어 서는 건 꺼려졌고, 그렇게 한 적이 잘 없다. 날 어느 쪽에 기운 사람으로 보면 화를 냈다.
난 이 생각 저 생각, 이 판단 저 판단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란 말야. 그리고 뭐든 될 수 있는 사람이란 말야.
다른 건 그토록 화나지 않았다.

나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한다.
기운 채로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는 돌아오는 아픔이 너무 클 테니까.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그 아픔에 속이 썩어 나갈 테니까. 그 아픔에는 남들의 따가운 시선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을 테지. 멋지게 줏대를 가져서 얻는 이득보다 그 아픔이 더 컸을 테니까.

불확실성을 마주하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